Social Plants 사회적 식물


텍스트, 편집, 디자인/
강희정, 김라연, 조혜진
28페이지, 100부

Text, editing, desigin/ 
Heejung Kang, Rayeon Kim, Hyejin Jo
28pages, 100 copies
14,7x21,2x 0,2cm
Seoul, 2014


작가와 식물

적당한 양의 빛과 수분, 영양분이 잘 갖춰지지 못하면 식물은 죽어버린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다보면 말없는 그것들을 미쳐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해 이런 일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세심한 보살핌과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식물과 비슷하며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식물이 자라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작업이 시작되는 최초의 출발점이 있지만 작가가 작업환경, 재료들의 성질에 반응하는 가운데 작품은 계속해서 변화하며, 작가는 그러한 과정을 치밀하게 관찰하면서 작업을 진행해나간다. 즉 작가는 창작자인 동시에 관찰지이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간다.

르네상스 미술의 성인, 성녀, 또는 그리스도는  아름다운 형상의 완벽성을 나타내고 있지만 인간적인 표정이 결핍되어 있다. 그러나 카라바지오의 성인은 슬픔과 즐거움, 통곡을 보인다. 마리아는 웃음을 짓고 또 막달라 마리아는 산발의 머리에 울고 분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표정의 연출은 바로크 예술의 중요한 목표였다. 이것은 정신주의의 한 표현이었고, 카라바지오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 카라치(Carracci Annibale)와 루벤스(Rubens)와 함께 바로크 예술의 창시자가 된다. 이들이 종교로 인간극화 하였고 이들을 이어 건축, 조각까지 확대한 전성기 바로크의 대표자는 베르니니(Bernini)였다.
                                                 
이들은 신성을 관념화, 또는 이상화한 것이 아니고, 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카라바지오는 그 삼인의 작가와는 달리 극단적이고 격렬한 자세를 취했던 탓으로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또한 역사적으로는 이탈리아 미술의 주류에서 소외당하였다. 그 삼인의 거장은 신과 왕국의 영광을 극화하였음에 비해 카라바지오는 예수와 마 리아의 비극을 극화시킨 탓이다. 그가 재현시켜보인 것은 영광이 아니고, 신앙의 괴로움이었다. 따라서 그는 승천하는 마리아, 또는 빛으로 충만된 천국 같은 것을 일점도 그리지 않았다.그 시대에 누가 루벤스를 택하고 누가 카라바지오를 택하나 하는 문제는 양식 수법상의 문제가 아니고, 신앙과 사상에 관한 문제였다. 화가들만이 아니고 후원자나 제삼자에게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누가 카라바지오 작품을 구입하고 누가 카라바지오를 보호하고 그를 비난하고 증오하는가는 그들이 어떻게 신앙을 보고 신심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에 관련되고 있는 것이었다.                                                                                         
                                                    <카라바지오> 임영방 저, 서문당, 1982, p97-98

파솔리니는 그다지 대화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남성적이고 거의 각진 외모에 기이하게 대립되는 그의 여리고 높은 목소리는 부드럽고 안정감을 주는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비브라토의 목소리에 대립되는 그의 외모는 숨겨진 내적 긴장을 느끼게 했다. 파솔리니는 거의 매일 로마 구시가지에 있는 음식점인‘단골 술집’에서 저녁식사를 위해 모라비아와 엘사 모란테를 만났다. 파솔리니는‘농부처럼’급하고 탐욕스럽게 식사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연기했던, 영화「데카메론」의 르네상스 화가처럼 말이다. 다른 작가들과 어울려 대화할 때면 그는 대부분 몇마디언급하는 데 그쳤다. 그 스스로도 말한 것처럼 파솔리니에게는, 특히 힘든 작업을 하며 보낸 오전에는 어딘가 수도승 같은 구석이 있었다. 편지에 쓰고 있듯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어한 것은 짐승처럼 일할 수 없을 때였다. 파솔리니는 오후 2, 3시까지 서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집에서는 느지막이 식사를 했다. 그는 종종 어머니와 둘이서 식사를 했다.(“모든 고통을 되새김하고 정체된 불안을 삼키며, 큰 만큼 고통스럽기도 한 호감을 말없이 삼킨 식사 시간.”) 자질구레한 일거리나 살림살이와 세탁 등은 그의 어머니가 도맡았다. 그 자신은 이같은 일상적인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능했고, 커피를 끓일 줄조차 몰랐다. 가장 중요한 일은 시와 소설, 잡지『작업실』이었고, 그리고 1950년대에는 시나리오 작업 청탁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을 무엇보다 밥벌이로 이해했고, 특히 일을 조직하는 것이나 재정적인 잡무들은 종종 귀찮게 여겼다.


“영화는 잔인하고, 정글의 법칙이 그 세계를 지배한다.”          
                                                   
                              <파솔리니> 오토 슈바이처 저, 안미현 역, 한길사, 2000, p82-83